from the museum director
guidance in building
the fifteen-year war
The Japanese Imperial Army
Mobilization of the Entire Nation
Japanese Colonies and Occupied Territories
Air Raids, the Battle of Okinawa,and the Atomic Bombing
Pre-War Endeavors for Peace
Determining Responsibility for War Crimes
modern warfare
buiding peace
getting to the kyoto museum for world peace
Air Raids, the Battle of Okinawa, and the Atomic Bombing
Air Raids Over Japan

1944년 11월 이후 미군의 일본에 대한 폭격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군사시설이나 군수공장 등이 폭격을 받았습니다. 1945년 3월부터 도쿄, 오사카, 나고야, 고베 등 대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었고, 대량의 소이탄을 투하해 도시를 다 불태웠습니다. 6월부터는 중소 도시에 대한 폭격도 시작되었습니다. 원자폭탄도 포함하면 약 50만명이 생명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총력전에서는 병사 뿐만이 아니라, 비전투원인 여성이나 아이들까지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The Battle of Okinawa

오키나와에서는 지상전이 벌어졌습니다. 미군은 1945년 3월 26일 게라마 열도에, 이어 4월1일에는 오키나와섬에 상륙했고, 6월 23일에 일본군의 조직적 저항이 종결될 때까지 격렬한 지상전이 계속되었습니다. 군대 뿐만이 아니라 민간인이 의용대로 조직되어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노인이나 아이도 포함해 현민의 4분의 1이 희생당했습니다. 오키나와전은 본토 결전을 위해 시간 을 벌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The Atomic Bombing

15년 전쟁의 막바지에 미군은 새로 개발된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잇따라 투하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항복을 앞당기고 미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하지만, 그 뿐 아니라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을 항복시켜서 그 지배 지역을 미국이 독점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이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축으로 한 냉전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pick up교토 원폭투하 계획

이 사진은 B29가 1945년 4월4일에 약 9600 m 상공에서 촬영한 항공사진 위에, 미군이 시가지와 공장 지역에 표시를 한 다음 미군이 원자폭탄으로 전멸될 것으로 예상한 지역이 투하 예정지(梅小路機関区)에서 반경 약 2400 m의 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제공/오티스 케리(Otis C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