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쟁은 국가가 모든 힘을 동원해 싸우는 총력전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장의 군대 뿐만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서 모든 국민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전장에 병사를 보낸 후에 여성과 청년, 학생과 아이들도 동원되어 전쟁에 협력해야만 했고, 물자는 모두 전쟁에 투입되었습니다. 국민의 불만을 억압하고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전쟁협력체제가 구축되었습니다.
중국과의 전쟁이 전면화되자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이 추진되어, 국민을 정신적으로 동원하는 동시에 경제적 협력도 강제하는 운동이 점차 강화되었습니다. 또 국민의 일상생활을 궁핍하게 하는 절약 운동도 추진되었습니다. 요쿠산체제(翼賛体制)라고 불린 이러한 총동원체제하에서 협력운동은 더욱 강화되어, 결국 절약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배급제도로 전환되었습니다. 문화도 통제되어 전쟁에 협력하는 내용이 아니면 상연 및 제작도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소학교도 국민학교로 개칭되었고, 군국주의교육이 추진되었습니다.
15년 전쟁이 시작되자, 정부는 대학 등의 자유를 제한하며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학생들은 수업을 그만두고 군수 공장에 동원되었고, 전쟁 말기에는 졸업도 하기 전에 군대로 징집되었습니다. 리츠메이칸대학에서는 일찍부터 국가주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1928년에 교토 고쇼(京都御所)에서 있었던 쇼와(昭和) 천황 즉위식 때에 이미 경비를 위한 리츠메이칸 금위대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1943년에는 리츠메이칸 금위대 학원결전체제가 조직되었습니다. 전시 하의 리츠메이칸은 군사색이 강한 학원이었습니다.
전쟁 당시 민가의 복원
피난 학동이 쓴 편지
피난 학동이 선생님에게 보내 편지.「선생님 틈이 나시면 편지를 보내주세요.」 「저는 돌아가고 싶어서 참을 수 없어요.」라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뮤지엄 소장.